일상생활/달리기

새로운 세계 - 춘천에서 깨닫다

황준기 2012. 10. 22. 15:38

새로운 세계 - 춘천에서 깨닫다.

2005년 10월 25일 오후 1:24공개조회수 0 1

2005년 10월 23일
황준기  -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뛰다.

 



  칙칙폭폭 울어대며 산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증기기관차를 따라 마구 뛰어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없어진 경춘선 신공덕 역 부근에 살았던 나는 유별나게 기차 기적 소리만 들리면

역사를 향해 뛰어가고 손을 흔들어 대곤 하였다.

어린 나이에 저만치 멀리 있는 세상을 동경하곤 하였나 보다. 벌써 그 나이에 역마살이 끼어 있었을까?


  오늘 십수 년 만에 경춘선 기차에 올라 춘천을 향한다.

차창으로 비쳐지는 가을로 채색된 산 빛과 싸늘한 추위를 느끼게 하는 강물들 ...

언제부터인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주말마다 기차위에 올라 서 있는 나의 모습이 기억된다.

마석,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등 ...  틈만 나면 몰래 기차를 훔쳐 타고 경춘선 기차가 닫는 곳이면

구석구석 쏘다니며 물놀이, 고기잡이, 서리 짓에 온갖 악동 짓을 해가며 나는 서서히 커졌다.


  이제 잊고 있던 이 길을 어릴 적 감흥에 빠져 지나친다.

춘천을 뛰어 보겠다고 감히 길을 나서는 것이다. (겨우 하프 두 번 뛰어보고 ...) 무조건 경치가 좋다는

말에 현혹되어 춘천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놓았으니 아직도 어릴 적 치기는 변하지 않고 무모함은

극에 달해 있나보다.


  올봄 따사한 햇볕을 받으며 수락산 한 귀퉁이에서 막걸리 한 잔을 하며 체육관 동료이신 서수길님의

“달려볼까?” 하는 물음에 쉽게 “OK"하는 나의 답변은 취기에서인지 너무 쉽게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경향신문 하프에 두려움을 가지고 도전을 하였다. (2005.4.24)

처음 달림을 고도원의 아침편지 마라톤 동아리 분들과 어우러져 달렸다. 그리곤 내 자신에 놀랐다.

아마동님들 덕에 처음 느껴보는 행복이다. 혼자서는 완주하지 못했을 거다.(2시간 1분 53초)


  춘천을 뛰기 위해 경찰청 하프로 체력 점검을 해보기로 예정을 세웠다. (2005.10.16) 상당히 힘이 들고,

일주일 남은 춘천을 뛰기 위해서는 너무 모자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1시간 51분 7초)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굴러갔고 ... 제발 완주만 하자.

나는 완주할 수 있다. 스스로 마인드콘트롤을 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드디어 춘천공설운동장에 도착하여 옷을 홀랑 갈아입고 나니 빨개 벗은 듯이 추위가 온몸을 감싸고돈다.

마라톤 바지 뒷주머니에 일 만원을 비상금으로 챙긴다. 혹여 낙오해서 필요할지 모르니까.

이리저리 몸을 부대끼며 준비운동을 한다고 부산거리고 햇볕이 내리 쏟아지는 양지 녘을 찾는 꼴이

꼭 병아리 신세라. 그런데다 마라톤은 출발 했는데 우리 줄은 기록이 없어 맨 꼴 아비라 움직일 생각도

없다.  대회는 11시 시작됐고 나는 11시 35분경 스톱워치를 가동한다.


  시작부터 서서히 경사가 이어지고 나는 힘차게 발을 내딛으나 겁이 덜컥 난다.

어느 정도의 속력을 내야할지. 감이 전혀 없다.

까불지 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리에다 압력을 가하며 앞으로 나간다.

3km 정도 지나니 경사가 잡혀나가고 서서히 밑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오히려 오름보다 내려섬이 더욱 불편하다. 뜀뛰기도 등산과 마찬가지인가 보다.

앞 선자의 뒷걸음을 따르다 보니 우측으로 춘천 호반이 나타나고 앞면에는 파스텔 톤으로 예쁜 물감이

들은 삼악산이 우뚝서서 나를 반긴다. 그리고 호수를 가르는 의암댐의 절경이 나의 눈에 가득 들어선다.

어릴 적 해매고 다니던 옛 춘천 길,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 하곤 하던 아름답고 호젓한

호반의 도로, 오늘 나는 이 길의 주인공이 되어 달린다.

카메라 아저씨의 샷다 소리에 두 손을 번쩍 들어 포즈를 취해보니 벌써 10km(00:59:13)이다.

그래 한 시간에 10km만 달리자. 그러면 결승점에서 힘이 빠져 지쳐도 완주는 한다.

나의 무식하고도 간단한 작전이다.


  쟁반 두들기는 소리와 아저씨 아주머니의 파이팅 외침, 도로변 펜션 주인 내우 인가 싶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응원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 ... 

어, 이 추위에 모타 보드가 달리고 수상스키를 타면서 목청 돋아 손을 흔드는 저 양반 ... 

아우, 풍덩 물에 빠지시네. 어쩌나 강물이 많이 시리도록 차가울 텐데.

강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아직도 남아있어 우리를 반기기도 하고 또한 이름 모르는 꽃잎들이 인사를

하기도 한다. 시골 촌로의 응원,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박수를 치는 아가들의 모습, 그리고 길 가던

처녀들의 외침도 모두 우리의 힘을 복 돋아 준다. 

식수대를 지나며 거리를 보니 20km 이다. (01:57:26)  그래 작전대로다.

 


  뛰다 보니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달린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따르고...

“나를 따르라” 무슨 전쟁터의 장군처럼 힘차고 저돌적인 기운을 휘몰고 풍선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간다.

무슨 마술에 걸린 듯이 나도 저 돌풍에 휩슬려 달려 나간다.

군대에서 구보할 때 군화 발소리로 웅장한 박자를 맞추듯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힘찬 기운을 느낀다.

25km 정도 왔을 때 쵸코파이가 놓여있다. 시장함에 하나하나 먹다보니

게 눈 감추듯 벌써 세 개나 입안에 넣고 있다. 두개 이상 먹지 말라 했는데. 양심이 없어요.

아차, 먹다보니 나의 장군님,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먹는 것에 눈이 멀어 본대를 놓쳐 버렸네.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걸음을 뛰어보나 저 놈의 풍선은 자꾸 멀어만 간다.


  저기 춘천댐이 보이고 호수건너 한참 먼 곳에도 열심히 뛰어가는 군상들이 보인다.

아이구, 나는 언제 저 곳까지 갈 수 있을까? 부러움과 함께 상대적인 피로감이 온몸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눈에는 저 멀리 인지는 몰라도 내 마음이 이미 저 곳에 가 있으니 까짓 것 축지법이라도 써 볼거나.

스스로 위안을 해가며 움직이는 발의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해본다.


  김화, 화천으로 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우리는 우측 춘천댐을 건너며 앞으로 내닫는다.

지나쳐 온 호수의 물결이 잔잔한 바람에 너울거리고 강가에 너부러져 있는 갈대가 은빛 날개를 뽐내며

살랑 살랑 바람에 일렁거린다.

27km 지점을 지나며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되고 많은 달리미들 힘에 부친 듯 걷는 자가 늘어난다.

드디어 언덕을 넘어서고 시장함에 바나나를 입에 물고 보니 30km 지점이다. (02:58:34). 

이제 남은 거리 12km 정도, 힘을 조금 내면 4시간에 주파가 안 될까 ?

이리 저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경험이 전무라 해답이 안 나온다. 입력이 없었으니 출력도 당연이 없다.

갈등 속에 35km 지점에서 시각을 보니 3시간 25분, 그래 달리자. 힘을 조금 써서 4시간에 주파 해보자.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라. 뛰기 전에는 5시간 내에 완주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 하더니

이제는 4시간이라. 그런데 용을 써서 1km 정도 달리니 허벅지 부근이 파르르 떨려온다.

아뿔사 이러다 쥐라도 나면 달리기 끝, 겁이 덜컥 난다. 맨소래담을 바르고 에어파스를 뿌리고 부잡스럽게

다리를 챙기니 한결 부드럽다. 건방을 떨었나. 속도를 조금 빠르게 하니 바로 답이 나온다.

이게 마라톤 풀코스의 묘미인가?


  40km 지점을 통과 하면서 스톱워치는 4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이제는 다리가 감각이 없다. 발이 땅에서 잘 안 떨어진다. 이거 내발 맞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다 왔는데 종합운동장이 안 보여. 사람들이 올바르게 가는 건가? 도무지 힘은 들고, 골인점은 안 보이고,

불안 불안한 마음에 짜증만 난다.


  드디어 운동장이 보이고 양 옆에 도열해 있는 많은 사람들의 격려 박수 소리가 들린다.

조금 멋있어 보이려 가슴도 내밀고 고개도 반듯하게 세우며 전력 질주를 해본다.

운동장내의 빨간색 우레탄 바닥이 솜처럼 부드럽다.

마치 구름 위를 뛰듯이 살포시 지려 밟고 가는 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결승점 통과(04:15:17) - 야호 해냈다. 완주를 한거다.

삼바 리듬에 맞춰 신바람 나게 춤이라도 추고 싶다.


  50세를 바라보는 이 가을 나의 젊음에 감탄을 한다.

다가서는 미래에 항상 달릴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하련다.

마라톤을 알게 해준 아마동 이상규 회장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수능에 애쓰는 나의 둘째 딸 주연아 힘내라.

아빠가 마라톤을 완주했듯이 주연이도 성공 하리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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