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가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발췌합니다.
읽고 읽다 보면 백두산을 올라 가고 있겠지요.
백두산(白頭山2744m 중국측 천문봉 2670) 23일 달문, 24일 천문봉 2004. 7. 23,24(토,일)
북파(장백산 국제 관광호텔)-장백폭포-달문-천지(도보, 천지에서 1시간 포함, 총 3시간) 북파(장백산 국제 관광호텔)-천문봉(찝차)(2시간) |
둘째날, 7월 22일(목) <단동-단동항-심양(고궁)-야간열차-연길>
셋째날, 7월 23일(금) <연길-이도백하-백두산(장백폭포, 달문,천지)>
넷째날, 7월 24일(토) <백두산 천문봉-용정-두만강(도문)-연길-야간열차, 항공-심양>
다섯째날 7월 25,26일(일,월) 심양-단동시-압록강-단동항-야간 배편-인천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오 너 백두산
목 놓아 장군봉이여 백두산 (白頭山)(후략)/고은
드디어 백두 대간의 정점 백두산 천지의 물에 손을 담근다. 아프도록 아려오는, 차가운 물의 통증은 짜릿한 쾌감으로 몸을 떨게한다. 안개에 모습을 감춘 천지의 한 자락에서 대양 보다도 더 넓은 물결 위에 감격의 숨결을 토해낸다. 몸을 날릴 듯, 세찬 바람이 모지락스럽게 밀어내도 다가서고 또 다가서고....... 그러나, 신비의 베일에 감추어진 호수의 저편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고 높이의 산인데, 그 정점에 이처럼 거대한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호수라기 보다 안개에 가려진 모습이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인지, 바다의 한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이 거대한, 새로운 세상을 한 시간 여만에 오를 수 있다니......, 그래서 쉽게 찾아온 자들에게 영산(靈山)은 가슴을 닫고 열어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먼길을 달려 왔는데, 하룻밤 동안의 뱃길을 건너고, 폭염의 평원을 가로지르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뒤척이며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참으며 여기까지 왔는가, 야속하기도 하다.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 세차게 몰아치고 천문봉을 휘감은 안개는 가파른 벼랑을 타고 내려와 천지의 수면을 덮어 버린다. 5시가 가까워진 시각이니, 아직은 어두울 때가 아니건만 온 천지가 어둑해진다. 얼핏 바람결에 천문봉이 자태를 드러내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 것도 순식간이었다. 뒤미쳐 밀려온 먹장 구름이 사정없이 시야를 닫아 버린다.
모두들 천지에 오른 감격만 간직한 채 어서 내려가라 등을 떠민다. 백두산의 길목 이도백화에서 점심을 마치고 백두산을 향할 때부터 날씨는 꽤나 변덕스러웠다. 볕이 들었다가 갑자기 흐려져 가랑비를 뿌리기도 하고 세찬 바람이 불기도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행여나 했었는데, 백두산 입구를 지났을 때 쯤, 산봉은 짙은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찝차로 천문봉을 오르기로 했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천문봉에 올라봤자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그럴 바에는 육로를 걸어서 장백폭포를 지나 달문으로 천지에 오르자는 의견이었다. 대신 새벽에 일어나 천문봉을 오르기로 한다.
오후 2시 40분 버스가 백두산 입구 버스길 끝지점까지 오른다. 폭포로 올라가는 도보길의 입구다. 숙소로 정한 장백산 국제 호텔과 산장 등 아담한 숙박집 몇 채가 모여 있는 곳이다. 폭포를 향하여 올라가는 길은 계곡쪽으로 2,3백여m를 포장도가 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오른편으로는 자작나무숲이고 숲의 저쪽은 백두산 천지로부터 흘러내리는 물길이다. 숲을 벗어나면서 바로 장백폭포(비룡폭포)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의 물줄기가 산 자락을 가르면서 U자 형의 골을 형성하고, 양편으로는 거대한 산 줄기가 좁은 협곡을 이루는데, 폭포는 계곡을 향하여 전면 중앙에 위치한다. 시선의 정면, 양편 산줄기의 대칭점인 셈이다. 장백폭포(長白瀑布,비룡폭포 飛龍瀑布) 백두산의 크기만큼 그 규모가 장대하고 대단하다. 폭포 주변 바위 벼랑은 풀이나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빛 화산석이다. 그래서 검은 벼랑과 대비되어, 물줄기가 유난스럽게 흰빛이다. 떨어지는 물살은 바위에 부딪고, 흰 포말로 부서지며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바닥으로 떨어진 물길은 검은 화산석을 굴리며 빠른 여울을 이루어 굽이쳐 흘러내린다. 폭포의 전경을 아무 거칠 것이 없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신비롭다. 폭포의 위세가 대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산경에 벗어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마치 아이맥의 한 화면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산을 오르기전에 평지에서 볼 수 있는 폭포다. 폭포에 오르는 길가로는 온천수가 솟아나와, 그 물로 계란과 옥수수를 익혀서 팔기도 한다. 전에는 이 폭포앞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폭포를 끼고 우측 벼랑을 뚫고 폭포 윗 쪽 천지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 놓아 누구나 오를 수 있다. 벼랑을 오르는 계단길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가파르다. 시멘트로 길옆과 지붕까지 씌워 동굴 모양의 통로를 만들어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도 무난히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서자 거대한 평원이 펼쳐진다. 폭포의 상단부에서 천지의 못에 이르기까지 오른편으로 솟아오른 관일봉(2,590m) 산자락이 길고 밋밋하게 오르면서 아랫녘은 넓고 평평한 평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 산자락의 왼편끝으로 천지에서 발원한 거대한 물줄기가 평원을 가르고 장백폭포로 흘러들고 있다. 물길 왼편으로 소천흴봉(2,472m), 철벽봉(2,560m)이 급경사로 솟아올라 지금 산의 상단부는 구름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평원은 각종 야생화 꽃밭이다. 고산비봉, 백위릉채, 구름국화, 개불알꽃 하늘매발톱 등 모지락스러운 바람결에도 전신으로 버티면서 산자락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천지의 물에 이르기까지 산기슭으로 펼쳐진 야생의 화원을 가로질러 천지, 달문으로....... 달문은 천지에서 흘러 넘치는,천지가 토해내는 물길을 받아내는, 거대한 강줄기의 어구다. 달문은 장대한 호수, 천지(天池)의 물결로 이어진다. 조급해진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러 마지막 조그만 언덕을 넘어서자 펼쳐지는 천지의 장관......... 감동과 감격으로, 멀고 먼길 달려온 더운 숨결을 토해낸다. 천지의 물에 손을 담근다. 잠시도 머물 수 없게 금새 뼈속까지 아려온다. 내기를 한다. "물에 손을 담그고 30초를 견딜 수 있는 사람에게 10만원을 준다." "정말?" 그러나 단 10초도 견디지 못한다.
사진에 담고,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한 여름, 구름에 덮인 천지의 한 켠에서 혹시나 거센 바람결에 구름이 밀려가기를 기다리다, 결국은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달문까지는 여유있게 시간을 잡아도 3시간 정도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다. 여장을 백두산 관광 호텔에 풀고 내일 새벽을 기다린다. 새벽 2시 40분(현지시간)이면, 천문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시간으로는 3시 40분이니, 백두산은 지대가 높아서 설악산보다 한 3,40분 일찍 해가 떠오르는 것 같다. 새벽 2시. 고단하고 지친깐에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잠을 깨어 준비를 한다. 그런데 세찬 바람결이 창문을 때리는가 했더니, 창밖으로는 비가 주룩주룩 퍼붓는다. 밖에 나갔다 온 이들이 모두들 실망한 표정들이다. 결국 예약한 찝차가 호텔앞에 들어서고 빗속에 모두 길을 나선다. 칡흑같은 어둠속에 세찬 빗줄기를 뚫고 찝차들이 출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랫녘에서는 빗속에서도 시야가 확보되었는데, 그러나, 운무속으로 들면서부터는 앞길을 가늠할 수가 없다. 앞차의 백등을 따라 가는데, 가시 거리가 한뼘도 확보되지 않는다. 길가를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전혀 모른 채, 간담이 서늘하게 '가늠 운전'을 하는 것이다. 선두 차량이 가지 못하고 멈출 때는 길을 찾는 것이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운전하는 것과 같은 지경이다. 모두들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는 동안, 좁은 비탈길을 돌고 돌기를 30여분 드디어 천문봉 정상에 도달한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기다린다. 혹시 바람결에 운무가 걷혀가기를...... 시간은 30분을 넘어 일출 시각에 가까워지는데....... 얼핏 뿌옇게 동트는 하늘이 구름사이로 드러난다. 모두들 환호성을 울리면서 찝차를 벗어나 천문봉 가파른 비탈길 50여미터를 미끄러지면서 올랐으나, 하늘은 다시 닫히고......,
모지락스러운 바람결에 떨면서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결국 짙은 운무로 덮인 천문봉을 뒤로 하산길로 들어선다. 해가 떴는지, 오를 때보다는 그래도 뿌연 안개속에서라도 길을 가늠할 수가 있다. 호텔이 바로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안개를 벗어난다. 아침에 내리던 비도 그쳐 있고, 햇살이 구름 아래로 비친다. 여기서 차를 멈추고 구름 아래로 얼굴을 내민 태양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사실 백두산에서 일출을 본다거나 천치의 모습과 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 같다. 훗날 또 기회가 있으려는지, 그 때는 저 북한 땅을 통하여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인 장군봉(북한지역)을 오를 지도 모른다. 호텔에 이르자, 비룡폭폭 위쪽으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용오름이 있으려나 보다.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든다.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서쪽으로 압록강, 동으로 두만강, 북으로 송화강을 이루는데, 압록강에 대하여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일치하고 있으나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은 우리와 중국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우리는 두만강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중국측은 토문강이라 주장하고 있다. 백두산 정계비에 의한 국경선 문제 때문이다. 원래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에는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강을 토문강이라 했으며, 이 토문강이 송화강과 만나는 지점부터 송화강이라 표기했다는 것이 많은 자료에서 제시되고 있다.
정계비를 세울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사실 주인없는 땅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한다. 두만강과 토문강 사이(간도)에는 청나라 정부에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여 중국인은 극소수였으나, 조선인들은 집단으로 거주하여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토 소유권 다툼이 있었을 때, 조선측은 주민들이 대부분 조선인들이고 개발도 조선 주민들이 했다는 점을 들어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결국 그들고 조선의 영토로 인정을 하고 토문에 정계비까지 세웠다. 그러나, 일제 침략시 누군가에 의하여 정계비가 뽑혀나가고, 중국측에서는 중국음으로 비슷한 두만강을 토문강이라 하여 정계비 위치와 국경선을 두만강으로 바꾸어 놓고 만다. 송화강의 상류를 토문으로 하여 국경선을 정한다면 송화강과 두만강 사이, 즉 간도땅은 당연히 우리 영토가 되는 것이다. 일제 침략시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청나라와 간도문제에 관한 교섭을 벌여온 일제는 1909년(융희 3) 9월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撫順)탄광 개발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협약을 체결하고 만다. 지금 을사보호조약이 원인 무효라는 논거가 제시되는 시점에서, 간도는 새롭게 영토 분쟁의 소지를 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다가올 통일 한국의 시대에 영토 분쟁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중국은 고구려사까지 왜곡하면서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어쩔 수 없이 중국측의 영토가 되어 두만강이 토문강이라는 논리를 펴는 실정에서,그리고 대부분의 고구려의 유적이 중국의 영토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해결하는 문제는, 우리 미래사에 큰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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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장백산 국제 관광호텔)-장백폭포-달문-천지(도보, 천지에서 1시간 포함, 총 3시간) 북파(장백산 국제 관광호텔)-천문봉(찝차)(2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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