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삶의 흔적

6. 萬里長城

황준기 2012. 11. 9. 14:51



중국 본토 북쪽에 축조된 방어용 성벽. 현재 그 길이는 지도상 약 2700㎞이지만 중복된 부분을 합치면 그 2배 가까이 된다. 춘추시대 제(齊)가 영토방위를 위하여 국경에 쌓은 것이 장성의 기원이며 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도 이에 따랐다. 진(秦) 시황제(始皇帝)는 중국 통일(BC 221) 후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간쑤성[甘肅省(감숙성)] 남부로부터 북으로, 황허강[黃河(황하)]의 대굴곡부(大屈曲部)의 북쪽을 따라 동으로 뻗어나가, 둥베이[東北(동북)] 지구의 랴오허강[遼河(요하)] 하류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는데, 절반 이상은 전국시대의 연(燕)·조(趙) 등이 쌓은 장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근년에 이 장성의 동부 유지(遺址)가 둥베이지구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허시후이랑[河西回廊(하서회랑)]을 흉노로부터 지키려고 장성을 란저우[蘭州(난주)] 북방에서 서쪽으로 둔황[敦煌(돈황)] 서편의 위먼관[玉門關(옥문관)]까지 연장하였다. 남북조시대에는 북방민족의 활동으로 장성 위치는 남하하여, 6세기 중엽 북제(北齊)는 다퉁[大同(대동)] 북서에서 쥐융관[居庸關(거용관)]을 거쳐 산하이관[山海關(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을 축성하였으며, 수(隋)는 돌궐·거란 방비를 위하여 오르도스(내몽골자치구의 중남부) 남쪽에 장성을 쌓았다. 장성이 현재의 규모로 된 것은 명(明)나라시대로,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관광 대상이 되고 있는 바다링[八達嶺(팔달령)] 근처의 장성은 높이 8.5m, 두께는 밑부분 6.5m, 윗부분 5.7m이며, 위에는 높이 1.7m의 연속된 철자형(凸字形) 담인 성가퀴[城堞(성첩)]를 만들고 총안(銃眼)을 냈고, 120m 간격으로 돈대(墩臺)를 만들어 군사의 주둔과 감시에 이용하였다. 청나라 때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몽골과의 정치적 경계에 불과하게 되었다.
- 야후 백과사전 -


만리장성 팔달령을 향해 케이블카로 이동한다.
너무 낡아서 차라리 걸어 올라가길 바랬는데...
아무래도 단체여행이니...

















말로만 듯던 만리장성을 나는 삼각산 성벽보다 조금더 크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탄한 곳에는 장성을 축조하고 산비탈은 자연을 이용한 성곽이려니 하는 ... 그런데 엄청난 넓은 지역, 까까지른 듯한 산비알 구비구비 성벽으로 이어진 산자락을 보곤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저 장성을 축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을가?
연일 중국이라는 나라의 규모에 입을 다물뿐...
역사속 복잡한 아이러니는 생각하지 말자.
영국인이라나?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트래킹 했다나.
기회가 되면 이 장성을 달리고 걷고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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