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북경)] 내성(內城)에 있는 명(明)·청(淸) 시대의 궁성. 쯔진[紫禁(자금)]이란 천제(天帝)의 궁성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자미원(紫微垣) 성좌에서 따온 이름으로 황제의 거처를 뜻한다. 처음에는 명(明)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난징[南京(남경)]에서 베이징으로 옮길 때에 원(元)나라 대도(大都)의 궁성자리를 이용해서 축조하였고, 십수 년이 걸려 1420년에 완성되었다. 그 뒤 명·청대를 통해서 궁전과 문 등이 가끔 보수 또는 개축되었고 명칭도 바뀌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명나라의 양식을 대체적으로 계승하여 청나라 때 세워진 것들이다. 쯔진청은 베이징 구내성(舊內城)의 중앙 남부 근처에 있는, 동서 약 750m, 남북 약 9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약 72만㎡의 한 구획으로서 바깥쪽에 해자(垓字)를 팠다. 성벽의 네 둘레에는 각각 문이 하나씩 있고,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인데 특히 웅대하며,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과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있다. 성내는 남과 북으로 대별되고 남쪽은 공적인 장소인 외조(外朝)로서 오문에서 북쪽을 향해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 등이 중축선상(中軸線上)에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그 동서에 문화전(文華殿)·무영전(武英殿) 등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중화전, 보화전과 함께 3층 백색대리석의 기단 위에 세워진 태화전은 동서 약 60m, 남북 약 33m의 당당한 건물인데 쯔진청의 정전(正殿)으로서 주요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외조의 북쪽은 황제가 개인적 생활을 영위하는 내정(內廷)으로, 보화전의 북쪽 건청문(乾淸門)에서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등이 중축선상에 일렬로 늘어섰으며 그 좌우에 후비(后妃)들이 거처하는 동서육궁(東西六宮)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있다. 대소의 무수한 건물과 장벽(牆壁) 그리고 문이 정연하게 배치되고 황유리(黃瑠璃)기와와 붉은칠을 한 기둥들이 어우러져서 집단미를 이루는 이 호화로운 대궁전은 명·청시대 권력의 강대함을 잘 표현한 것이다.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중국문화재의 전당이다.
- 야후 사전 -
1987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 마지막 황제"를 보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경에 사로 잡혀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이곳을 구경 왔으니... 가슴 한것 부푼 기대를 가지고 첫발을 내딛는다.
서태후 (西太后 1835∼1908)
서쪽 후궁에 살아서 명칭이 서태후 란다.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자금성을 들어서면서 엄청난 규모에 놀라기도 했지만 짜증스럽게
너무 많은 인파와 중국인들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에 혼이 모두 빠져
나갈듯 정신이 없었다.
자금성 바닥 - 벽돌처럼 대리석을 쪼아서 땅속 깊게까지 시공,
누군가 땅굴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게 사전 예방을 하였다.
수없이 많은 쇠항아리 - 물을 가득 부어 유사시 소방수로 사용 하였다.
금으로 도색된 항아리 - 표면의 긇은 자국은 일본군의 만행이라나?
하도 걷다 걷다 힘들어 우리 일행들 지쳐서 움직이지 못한다.
금사자상 - 암수 구별법(암놈은 새끼를... 숫놈은 구슬을...)
사자 귀들이 밑으로 쳐져 있는 이유?
여기서 부터는 내궁(즉 여인들이 사는곳)
여자는 정치에 참견하지 말라는 뜻이라나?
자금성 뒤쪽 후원인 어화원(御花園)
어화원 한쪽에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암벽위에 정자를 세웠다.
이렇게나 엄청난 궁전에 화원이라고는 한쪽 구석에 아주 조금...
남문에서 시작 문 하나 하나 유심히 보지 못하고 직선으로 걸어...
겨우 북문에 도착하니 많은 이들 기운 떨어져 움직임이 둔하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나무 한그루 없으니,쉴곳도 없고...
좌우를 둘러보려 해도 너무 엄청나,앞만보고 걷는다.
자객이 무서워 나무도 심지 못했으니... 참으로 불상한 황제 올시다.
성곽과 담에 암벽을 쌓은 흔적이나 손으로 잡을수 있는 여지가 없게
맨들맨들하게 회칠을 했는지 어느 누구 하나 기어 올라갈수 없게
시공 되어 있다. 그러니 중국 무협지는 항상 하늘로 치솟거나 벽을
뛰어 너머가니 허허... 이것도 문화 차이라네?
북문으로 나오니 성벽을 따라 넓게 해자를 파놨다. 일본 오사카성의
해자가 결국은 자금성을 모방 한건가?
중국,일본,우리 - 결국은 아닌듯 하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겠나?
그러면서도 중국은 엄청나게 크고 장엄하긴 해도 세세한 세련미나
화려한 미적 구성에서 우리 보다는 덜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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