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삶의 흔적

설악산 얘기

황준기 2012. 11. 9. 14:31

설악산 얘기

진교준

사진 / 오원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채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돌...
아무런 오해도
버ㅂ률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장애도 없고
멀리 동해가 바라뵈는 곳
산과 하늘이 융합하는 틈에 끼어 서면
무한대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수도 있는 것을....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 쉼 하느라면
내게 한 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소박한 욕망일 수도 있는 것을...
자유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들어 버리고 싶은가.


깨어진 기와장처럼
오세암 전설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어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좇아간다는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백담사 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 술잔을 만들자고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런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철학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해 골 에 다 가 ...



나는 산이 좋더라.
영원한 휴식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oh, one !

(전략).. 그러한 악동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주일가량 학교를 결석한채,

당시로서는 삼엄한 전방이였던 설악산에 가서 뻐근하게 무전여행을 하고

돌아 온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그의 <설악산 얘기>였고, 이 우렁찬 시는

조병화 선생님에 의하여 '제1회 경희문학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후략)

- 박태순(朴泰洵) 발문(拔文) 중에서 -

진교준 (1941~2003) / 서울 출생. 서울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 졸업.

1972년 11월, 진교준 시집<설악산 얘기>출판(세기출판사)

序 文

시는 현실을 뚫고 영원을 보기 위한 그 파괴의 화약이라고 말한 시인도 있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 현실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대중적으로 너무나

굳어져버려 시로서 뚫긴 힘들게 되어 버렸다.

이러한 굳어져버린 물질주의의 현실에서 시를 쓴다는 건 너무나 비참한 이상주

의의 후예들이다.

그러나 시를 쓰지 않고선 이 영혼부재의 현실을 살아 갈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

이 있다. 이 시집의 주인공이 진교준 군이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진군은 언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정신으로 시를 쓰는 사람 편에 든다.

때문에 정신이 글이 되고 말이 그 기록이 된다. 때문에 말이 글을 따르지 못할

때도 간간 있다.

진군은 서울고교 시절 제1회 서울고교문학상을 받고,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고 생활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그 현실의 아픔을 살고 있다. 그

러나 군에겐 시가 있기 때문에 그 아픔이 오히려 영혼의 화약이 되리라 믿는다.

여기, 그 진군이 숙명적으로 품고 있는 시의 화약이 밝은 영혼을 뚫어주길 바라,

이 글을 하나 흔적으로 남긴다.

1972년 10월 30일 安城 片雲齊에서 趙 炳 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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